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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생금지

깊생금지

최근 생각을 하면서 살아간다. 실제로 생각을 하고있나? 그걸 물어보면 잘 모르겠다. 하지만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아간다면 그저 동물과 다를바없지않는가! 나는 내가 동물임을 부정하고있는것이다. 이런 규칙에 저항하고자 하는것은 시지프스와 비슷한 삶인가. 그렇다면 그건 멋진일이라고 느낄까? 내가 바라는것인가? 그것또한 모르겠다.

세상에는 모르는게 너무나 많다. 나는 나조차 잘 모르는데, 무엇에 대하여 왈가왈부 할 수 있은가. 그러니 말수는 점점 줄어들고, 생각을 하고, 또 생각을 한다. 그렇게 무언가 내 안에만 머무는 일이 늘어갈수록 나는 점점 비대해지며, 동시에 보잘것없다고 느낀다. 내가 그렇게 변할수록 세상이 얼마나 두꺼운지에 대한 감정을 종종 느낀다.

두껍다는 감각은 조밀하다는 감각과도 비슷하다. 아니면 입체적이라고나할까. 길거리에 있는 모든 요소들은 아마 자신의 서사와 시간, 그리고 특징들을 갖고있다. 저 사람, 저 전자기기, 저 옷, 저 횡단보도, 저 돌멩이. 자세히 보면 너무나 조밀해서 여기서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샤르트르의 ‘구토’를 읽지 말았어야할까?

혹은 르베의 ‘자살’을 읽지 말았어야할까? 하지만 (너무 인간중심적인 표현이지만) 생각을 하고, 고통받는 것이 인간만이 가질 수 있는 특성이지 않는가. 이러한 부조리속에서 다들 성장해가며 생각을 멈춘다. 고민을 그만둔다. 고민해도 바뀌는 것이 없으니 그저 생각을 멈추고, 즐거운데로 살아가는 것이다. 동물적인 삶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것이 나쁜가? 그것또한 모르겠다.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지을 수 없음을 알고있으니, 앞으로 나아가야한다. 전부 나의 선택이다. 나의 선택임을 인지하는 순간, 과거에 대한 후회가 제일 먼저 든다. 그리고 후회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또 다시 생각을 그만둔다. 그렇게 조금은 행복해지고, 나의 자아는 잠시 잠들게 된다. 누군가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느낌이다. 나의 자아가 아닌 사람이 삶을 대신 살아준것이다. 또다시 내가 정신을 차리면 결국 또다시 생각에 빠진다. 나는 생각할때만 존재하는 것일까?

정적

밥을 먹으며 아무런 소리도 듣지 못하고, 그저 나 혼자 있는 공간에서 밥을 먹는 소리만 들리는것. 나는 아마 소리에 민감하다. 그리고 아마 미각?이라고 해야하는 것도 비교적 그러하다. 정적은 이상하다. 아무것도 없는게 기본 상태가 아니라니, 얼마나 과잉되어있었단말인가. 아무것도 없는게 어째서 이렇게나 드물까. ‘존재와 무’를 다시한번 읽어봐야할까?

이러한 생각의 종착지점에는 이원론적인 생각을 포기해야한다는 생각, 몸과 영혼으로 나뉘어있는 느낌을 부정하고싶은 것으로 향해간다.